전체 글12 [20분 글쓰기-3기]6일차 조용한 수녀원에서 피정을 하고 있다.템플스테이와 비슷한, 가톨릭의 ‘소울스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이곳은 산속이라 인터넷은 느리고, 전화는 아예 터지지 않는다.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과연 업로드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기도하고, 묵상하며 조용한 곳에서 차려주는 밥을 먹는 이 시간이 참 여유롭고 복되다.게다가 내게 배정된 방은 넓기까지 해서, 나는 이 방을 ‘스위트룸’이라 이름 붙였다.유기농 식사에, 숲이 보이는 창밖 풍경, 그리고 스위트룸이라니… 어느 호텔이 부럽지 않다.아침이면 숲길을 산책하며 기도하고, 맑고 싱그러운 공기를 들이마신다.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경험인가.공부와 업무가 쉴 새 없이 몰아치던 일상에서 벗어나이런 소소한 여유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다.성경을 읽고, 기도.. 2025. 6. 29. [20분 글쓰기-3기]5일차 아이들의 태도, 어른들의 그림자어제 사립 초등학교에 성폭력 예방교육을 다녀왔다. 2학년과 6학년 수업을 맡았고, 같은 내용을 각기 다른 수준으로 준비해 갔다. 아무래도 고학년은 논리적인 사고와 추론이 가능하니 수업에 더 잘 참여할 것이라 기대했다. 특히 사립학교인 만큼 전반적인 학습 분위기도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막상 수업을 해보니,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공립학교 아이들보다 오히려 수업 진행이 더 어려웠다. 교사의 질문에 대한 반응, 학생들의 질문 수준, 교실 안의 집중도 등 여러 면에서 저학년 아이들의 학습 태도가 오히려 훨씬 더 성숙하고 진지하게 느껴졌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곰곰이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함께 간 선생님들은 요즘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너무 귀하게만 .. 2025. 6. 28. [20분 글쓰기-3기]4일차 신라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 최근 들어 아침마다 한국사 공부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사 3급 이상의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원래 역사에 흥미가 많아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이 시간이 꽤 즐겁다.오늘은 백제와 신라의 정치 파트를 살펴보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삼국 중에서 최종적으로 삼국을 통일한 나라는 신라다. 가장 미약하고 삼국 중에서도 늘 변방에 머물러 있던 신라가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연성’에 있었다. 상황에 따라 손을 잡을 대상을 바꾸고 필요한 방향으로 동맹을 맺으며 원하는 바를 얻어낸 것이다.예컨대 내물왕 때에는 왜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손을 잡았고,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장수왕 시기에는 오히려 백제와 연맹을 맺어 .. 2025. 6. 27. [20분 글쓰기-3기]3일차 다른 삶을 마주하며 나를 묻다대학원 동기를 만났다. 그녀는 90년생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고, 의사 남편을 둔 중상층의 주부다. 내 기준에서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녀는 몇 년간의 경력 단절을 거쳐 대학원에 입학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였지만, 늘 바쁘게 살아가는 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말해주는 그녀와의 만남은 편안하고 즐겁다.최근에는 아이들 교육 문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유로운 교육관을 가진 나로서는 주말부부까지 감수하며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 먼 도시로 이사하려는 그녀의 결정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단순하고 분명하게 선택하는 그녀의 모습이 가끔은 부럽기도 했다.반대로 그녀는 나의 자유로움과 나만의 단순함을 부러워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 2025. 6. 26. [20분 글쓰기-3기]2일차 내면을 닦는 시간아이들이 미국으로 떠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처음 공항에서 등을 돌리던 아이들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멀리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걱정도 컸지만, 아이들은 예상보다 잘 적응해주고 있다. 역시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고 성장하는 힘이 있는 존재라는 걸 느낀다.아이들과 남편이 떠난 후, 나는 쉬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내야 했다. 대학원 졸업을 위한 교육봉사 60시간, 졸업시험, 교생실습 한 달, 상담사례 20시간 등 해야 할 일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느 날은 체력이 바닥나는 게 느껴질 정도였고, 결국 눈의 실핏줄이 터지는 일도 겪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보며 스스로도 놀랐다.자유가 주어진 듯했지만 그것은 온전한 자유는 아니었다.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았고, 책임의 무게.. 2025. 6. 25. [20분 글쓰기-3기]1일차 잠시 멈춰 마신 하루어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장마철이니 비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괜스레 설렌다. 내리는 비를 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망설임 없이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도 함께 해주는 일행이 있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따끈한 돌솥밥에 구수한 누룽지를 만들어 먹고, 통창이 있는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과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나도 모르게 나를 숨기지 않고 조금 더 솔직하게 내보이게 된다. 하루 종일 조용히 비가 내렸고, 세상은 맑고 깨끗해졌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지고 맑아진 .. 2025. 6. 25.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