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
![[20분 글쓰기-3기]4일차](https://blog.kakaocdn.net/dna/YjXrR/btsORSGHVzN/AAAAAAAAAAAAAAAAAAAAAG9qqJLt1kOkjnkVqL9_3AD7E7enQ7Wtih0Lm4mv4IbP/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39739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fUgsW5WI3DLAGHLiZ%2BB1EYg1VS8%3D)
최근 들어 아침마다 한국사 공부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사 3급 이상의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원래 역사에 흥미가 많아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이 시간이 꽤 즐겁다.
오늘은 백제와 신라의 정치 파트를 살펴보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삼국 중에서 최종적으로 삼국을 통일한 나라는 신라다. 가장 미약하고 삼국 중에서도 늘 변방에 머물러 있던 신라가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연성’에 있었다. 상황에 따라 손을 잡을 대상을 바꾸고 필요한 방향으로 동맹을 맺으며 원하는 바를 얻어낸 것이다.
예컨대 내물왕 때에는 왜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손을 잡았고,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장수왕 시기에는 오히려 백제와 연맹을 맺어 모두가 탐내던 한강 유역을 점령하게 된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나당연합이다. 오랜 시간 우호적이던 백제와의 연합을 끝내고 당나라와 손을 잡으면서 신라는 결정적 기회를 잡는다. 그렇게 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의 손을 뿌리친 연개소문의 나라 고구려, 마지막에는 당나라마저 물리치며 삼국 통일이라는 위업을 완수해 낸다.
어떤 이는 신라의 전략을 ‘기회주의’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통일신라는 그 선택 위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살아 있는 역사’라 불리는 경주라는 도시를 남긴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신라는 그런 계산과 외교의 이미지가 아니라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신라의 금관이 상징하는 문화의 황금기다.
삶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과 손을 잡을 것인가, 그때마다 나아갈 길을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일. 결국 중요한 건 욕을 덜 먹는 게 아니라 내 인생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하는 것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