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태도, 어른들의 그림자
어제 사립 초등학교에 성폭력 예방교육을 다녀왔다. 2학년과 6학년 수업을 맡았고, 같은 내용을 각기 다른 수준으로 준비해 갔다. 아무래도 고학년은 논리적인 사고와 추론이 가능하니 수업에 더 잘 참여할 것이라 기대했다. 특히 사립학교인 만큼 전반적인 학습 분위기도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해보니,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공립학교 아이들보다 오히려 수업 진행이 더 어려웠다. 교사의 질문에 대한 반응, 학생들의 질문 수준, 교실 안의 집중도 등 여러 면에서 저학년 아이들의 학습 태도가 오히려 훨씬 더 성숙하고 진지하게 느껴졌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곰곰이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함께 간 선생님들은 요즘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너무 귀하게만 키우다 보니, 교사의 지적을 불편해하고, 그 결과 아이들도 타인의 조언이나 지도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
문득 내 아이들이 떠올랐다. 내 자녀는 학교에서 어떤 아이로 평가받고 있을까? ‘아이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내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어떤 학부모로 기억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물음이 이어졌다.
"내가 진정 다른 아이들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인가?"
교실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태도는 단순히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어른들과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다. 어른들이 아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지가 아이의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돌아보면, 나 역시 내 아이에게는 실수할 기회를 주고 다정한 시선으로 대하면서도 수업 시간에 만난 다른 아이들에게는 ‘태도가 안 좋다’는 말 한마디로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내 아이의 담임에게 나는 이해심 깊은 부모로 기억되길 바라면서 나는 교실 안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었는가.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이해와 기다림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오늘 다시 떠올렸다. 내 아이에게 베푸는 관대함이 나의 기준이라면 교실 속 모든 아이들에게도 그 시선이 향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아이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내가 어떤 시선과 태도로 아이를 대하느냐가, 그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만들어간다. 오늘의 수업은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자리에 섰지만, 실은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