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언어의 숲을 걷다
그림책을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지 어느덧 8년이 되어 간다.
처음엔 그저 짧은 글에 울림을 담고 있는 문장들이 좋아서였다.
그림책은 빠르게 읽히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짧고 가볍지만, 결코 얕지 않은 이야기.
그때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림책을 활용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지금은 아이들을 상담하며 중요한 도구로 그림책을 자주 사용한다.
때로는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을 이야기 대신 꺼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 마음의 창을 조용히 두드려주는 매체가 되어준다.
한 권의 그림책이 건네는 위로와 공감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최근에는 영어 원서 그림책을 읽고 있다.
미국에 있는 나의 귀염둥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문법책 대신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문장을 분석하기보다 문장을 익히고,
말을 외우기보다 이야기를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언어를 흡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은 이렇게 말했다.
“Reading is not only the best way to learn a language. It’s the only way.”
(“읽기는 언어를 배우는 최상의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문법을 공부한 학생들보다
독서를 생활화한 학생들의 언어 능력이 더 뛰어났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반복을 낳고, 반복은 익숙함을 만든다.
그리고 익숙함은 결국 내 것이 된다.
그림책은 단순한 이야기 속에 반복적이고 패턴화 된 문장을 품고 있다.
그래서 언어 습득에 탁월하다.
게다가 영어 그림책은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만큼 표현은 풍부하고, 문장 구조도 결코 얕지 않다.
그림책이 유아용이라는 선입견은,
사실 그 언어의 밀도를 모르는 사람의 편견일지 모른다.
또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문학’을 가까이했다는 것이다.
정철, 유시민, 황석영, 김영하 작가 모두
영어 고전을 통해 감각을 길렀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세익스피어는 그들에게 시적 운율과 리듬을 안겨주었다.
언어는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 게 아니라,
그 언어가 살아 있는 리듬과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걸
그들도, 그리고 나도 느끼고 있다.
오늘도 나는 한 권의 그림책을 펼친다.
짧은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익숙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나를 향해 말을 건다.
문법을 외우지 않아도, 언어는 스며든다.
그림책은 내가 언어를 사랑하는 방식이고,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이며,
지금은 나를 더 멀리 데려다 줄 작은 보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