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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글쓰기-3기]11일차

by 루나79 2025. 7. 6.

스물스물, 연결되는 것들

[20분 글쓰기-3기]11일차

스티브 잡스는 리드 대학을 중퇴한 뒤에도 캠퍼스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택한 건 학점도 남지 않는 캘리그래피 수업의 청강이었다.
먹고살 길도 막막한 시절, 그는 그저 아름다운 글씨와 글꼴 디자인에 빠져들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 선택의 의미를 몰랐다.
잡스 자신조차도.

그러나 10년 뒤, 그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하면서
비트맵 폰트와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적용했다.
그래서 애플은 ‘예쁜 글씨체가 있는 컴퓨터’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회사가 됐다.

그는 말했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앞을 보면서 점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봤을 때만 연결할 수 있죠.
그러니 언젠가 미래에서 그 점들이 연결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 역시 점처럼 흩어져 있는 삶의 조각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깊게 파기보다는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배우고, 시도해보는 나.
세상은 종종 이런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라도 잘해라."
그 말 앞에서 나는 자주 움츠러들었다.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붙잡고 있는 이 작은 관심들이 정말 의미 있는 걸까.

그런데 최근 하나둘씩 연결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예전엔 흩어져 있던 경험들이 서로 손을 잡는 순간들이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문득 글쓰기 수업에서 느꼈던 감정 표현의 방식이 떠오르고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시 한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처럼.
그때는 몰랐다.
왜 그 일을 했고 왜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그저 이끌리듯 머물렀던 시간들이 지금은 내 안에서 유기체처럼 연결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믿어보기로 한다.
필요 없는 경험이란 없다는 것을.
기웃거림도 잠깐의 열정도 오래 머물지 못했던 관심도
어딘가에서 스물스물 연결되어 나를 이룬다는 것을.

인생은 점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선을 그어야만 보인다.
그리고 그 선은 시간이 흘러야 그려진다.
지금 나의 작은 점 하나가 어쩌면 언젠가 아주 결정적인 선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