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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20분-3기]10일차

by 루나79 2025. 7. 5.

누구의 택배인가요?

[글쓰기 20분-3기]10일차
[글쓰기 20분-3기]10일차

며칠 전부터 우리 집 현관 앞에는 정체불명의 택배가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다.
수령인 이름도, 연락처도 없는 택배였다.
처음에는 누군가 실수로 잘못 보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낯선 택배는 하루 이틀 간격으로 계속 도착했다.

주말 동안 여행을 다녀오고 돌아온 날, 현관 앞에 놓아뒀던 상자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누가 가져간 건지, 택배를 가져간 사람이 수취인이 맞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 또 다른 택배가 도착했다.
이쯤 되니 무언가 단순한 실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CCTV를 돌려볼까 하다가, 먼저 반송처리를 하고 현관문에는 조심스럽게 문구 하나를 붙였다.
“허락 없이 택배를 보내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그날 밤, 낯선 번호로 톡이 도착했다.
첫째 딸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택배 주소를 잘못 입력해 우리 집으로 갔다고 했다.
아이들을 상담하는 일을 오래 해왔기에 그 말이 얼마나 얇은 핑계의 거짓말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부모님께 들키고 싶지 않은  그 아이의 마음도 읽혔다.
몰래 온라인 쇼핑을 하며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반송처리가 되지 않은 나머지 택배는 따로 챙겨 현관 밖에 조용히 내놓았다.
서로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어 보내주고, 반송된 택배는 운송장 내역서를 캡처해서 전송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문장으로 다음번에도 혹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미리 양해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아이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을 반복해가며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문장 속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아이가 멀리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누군가의 현관 앞에 조용히 무언가를 두고 간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드러내지 않고, 들키지 않으면서도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사정들.

아이의 택배는 그렇게 나의 하루에 작은 여운을 남겼다.
택배 상자에는 이름도 주소도 없었지만, 그 안에는 사춘기 소녀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반품하지 않기로 했다.